2017년 말이었는지 2018년 초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추웠던 겨울, 다이어토닉 하모니카 단체레슨을 받기 위해 모인 사내들이 있었다. 다이어토닉 하모니카는 우리가 김광석의 라이브에서 흔히 보았던 조그마한 하모니카다. 물론 잘 불게 되면 아주 멋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 손 크기보다 작은 하모니카를 가지고 씨름하는 안쓰러운 모습이 되고는 한다. 당연히 거기에 모인 사내들은 잘 불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유일한 위로는 자기만큼이나 못 부는 옆자리의 사람들이었다. 한 시간을 그 조그마한 하모니카와 씨름하다 지친 사람들은 쉬는 시간이 되자 옷깃을 여며가며 담배를 피겠답시고 길가로 쭈뼛대며 모여들었다. 그중에 통이 큰 청바지와 체인, 챙이 달린 빵모자로 멋을 낸, 왠지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무언가 동떨어져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 그가 바로 2021년에 무려 열일곱 트랙이라는 볼륨으로, 게다가 첫 음원을 정규앨범으로 출시하는 김찬민이었다. 두 가지 종류의 솔직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쏟아내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 쉬쉬하는 사람들의 조심스러움을 윽박지르는 우악스러운 솔직함이고, 하나는 자기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솔직함이다. 나는 후자를 좋아한다. 사람들 나름대로의 솔직한 생각들을 들으면 내 세상만 복잡하고 머리 아픈 것이 아니라는 비겁한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찬민의 노래들에서도 그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후자의 솔직함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남들 앞에 꺼내 놓는 것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는 한다. 내게 처음 노래를 들려주던 김찬민도 마찬가지로 망설이고 있는 참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그를 부추겼다. 오픈 스테이지부터, 클럽의 오디션부터 출발해보라고, 밑져야 본전 아니겠냐고, 충분히 무대에 설 수 있는 노래들이라고. 거기엔 잘 되고 나면 내가 낼 수 있는 생색도 내심 계산되어 있었다. 김찬민은 다행히도 그 무책임한 부추김에 귀가 솔깃해졌고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나가다 정규앨범까지 발매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 큰 어른이 스스로를 소년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김찬민은 여전히 ‘나는 소년이다’라는 제목을 짓는다. 유행과 무관하게 노랫말 하나, 하나를 꾹꾹 눌러 부른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주와 세련된 가창을 선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앨범에는 2018년의 그가 그랬듯 여전한 김찬민이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조금 엿보는 건 왜인지 위로가 된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건강과 행복, 창창한 미래, 예견된 성공, 불타는 사랑’ 같은 것은 우리의 삶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스스로로서 있어 주는 몇몇의 사람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고 거기에서 나는 나 자신으로도 괜찮다는 위안을 얻어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김찬민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박현웅 [CREDIT] 작곡, 작사 : 김찬민 (track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보컬, 기타 : 김찬민 (track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Bonus) 보컬 : 김동용 (Bonus) 보컬, 기타 : 김기환 (Bonus) 보컬, 피아노 : 오재형 (Bonus) 보컬 : 윤슬 (Bonus) 보컬 : 이승하 (Bonus) 보컬 : 홍세영 (Bonus) 레코딩, 믹싱, 프로듀싱 : 김동용 (track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Bonus) 편곡 : 김동용 (Bo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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